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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4월 16일은 세월호 10주기라고 합니다.
올해 10살인 저희 딸이 세월호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는데 순간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저 또한 잊고 살다보니 답을 해주기가 쉽지 않아 오늘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포스팅을 해보려고 합니다.

목차

      4.16 세월호 참사

      2014년 4월 15일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을 출발하여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청해진해운 소속)가 4월 16일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 인근 해상에서 침몰해 304명의 사망과 실종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입니다.
      탑승객 476명 가운데 172명만이 생존했고, 304명의 사망, 실종자가 발생했으며, 더욱 안타까웠던것은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이 탑승해,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는 것인데요.

      출처 : 위키백과

      세월호 소개 

      세월호는 1994년 6월 일본 나가사키현에서 처음 건조된 여객선으로  일본에서 ‘페리 나미노우에(파도의 위)’라는 이름으로 2012년 10월까지 18년 동안 가고시마와 오키나와 사이의 여러 낙도들을 운항한 여객선입니다.
      이후 한국의 청해진해운이 이 배를 중고로 도입해 6개월 정도의 수리 기간을 거쳤고, 이 과정에서 객실 증설 공사를 진행해 총톤수를 6825t으로 늘렸다고 하는데요.
      또한 승객 정원도 일본 운항 때(804명)보다 117명이 많은 921명으로 늘려, 2013년 3월부터 본격적인 재운항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인천-제주 항로에 투입된 세월호는 화, 목, 토요일 오후 6시 3분 인천항을 떠나 다음날 오전 8시 제주항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운행되고 있었으며, 이는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어 주로 수학여행을 가는 학생이나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했다고 합니다.

      출처: 참여연대

      세월호 침몰의 원인은 ?

      세월호와 같은 대형 여객선의 침몰은 사실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일텐데요.
      참사 발생 이후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사고 원인 수사 등이 진행됐으며, 수사본부는 2014년 10월 세월호의 침몰 원인에 아래와 같이 발표했다고 합니다.

      ▷화물 과적 고박 불량 
      ▷무리한 선체 증축 
      ▷조타수의 운전 미숙 

      또한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 300여 명을 내버려 두고 배에서 탈출한  이준석 선장 등 선원 15명은 2014년 5월 재판에 넘겨졌으며 2015년 11월 대법원은 이 선장에게 살인혐의를 적용하여  무기징역, 나머지 선원 14명에게는 징역 1년 6개월~12년을 선고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들어난 많은 문제점

      이후 세월호 참사에는 침몰원인과 함께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더욱 안타까움을 느낄수 밖에 없었는데요.
      초기 대응시간을 허비
      세월호는 급선회로 배에 이상이 생긴 이후, 사고 수역 관할인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아닌 제주 VTS에 최초 신고를 해 초기 대응시간을 허비되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세월호가 진도 VTS 관할 수역에 4월 16일 오전 7시 7분에 이미 진입해 있었음에도 진도 VTS는 세월호의 관할 해역 진입 사실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여기에 신고를 받고 사고 해역으로 출동한 해경은 여객선 안에 300명 이상의 승객이 남아있음에도 배 밖으로 탈출했거나 눈에 보이는 선체에 있는 승객들만 구조했을 뿐 세월호 내부로는 진입하지 않는 소극적 구조로 일관했다고 합니다.

      출처: 참여연대


      선장 및 선원들의 무책임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 따르면 인명구조 등 비상상황이 발생 시 선장은 선내에서 총지휘를 맡아야 하고, 승무원은 각자 역할을 맡아 탑승객 구조를 도와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요.
      하지만 세월호 침몰 당시 선장을 비롯한 선원 대부분은 침몰 직전까지 탑승객에게 객실에 그대로 있으라는 안내방송을 하고, 자신들은 배 밖으로 나와 해경 경비정에 의해 제일 먼저 구조되었습니다.
      특히 세월호가 침몰한 곳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조류가 빠르다는 위험천만한 맹골수도(孟骨水道)였지만, 이 지역의 운항을 지휘한 사람은 입사 4개월째인 3등 항해사로 드러났으며, 더욱이 이곳을 통과할 때 선장은 조타실을 비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출처: 참여연대


      정부, 초동 대처 실패
      세월호 사고 발생 후 즉시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세우고 범 부처 총괄업무를 시작했으나, 곧 관련 업무를 안전행정부의 중앙재난대책본부(중대본)에 넘져졌지만 중대본은 사고 현장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수차례에 걸쳐 잘못된 정보를 발표하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여기에 경기도교육청도 세월호 침몰사고 직후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잘못된 공지로 공분을 일으키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그당시 뉴스를 보던 저또한  모든 학생들이 구조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린 기억이 나는데요.
      하지만 불과 몇시간 후 잘못된 공지라는 것을 알게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해수부/ 교육부/ 해양경찰청 등이 별도의 사고대책본부를 꾸리면서 사고 관련 대책본부만 10여 개에 달했는데요.
      이러한 중구난방이 된 대책본부를 통합해 범정부사고대책본부를 수립해 관련 업무를 총괄하겠다고 발표하나 정홍원 전 총리를 본부장은  하루 만에 철회했고, 결국 해수부장관이 다시 범부처 사고대책본부의 장을 맡게 되는 등 혼란이 극에 달하면서 구조 작업은 더욱 더져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초동 대처부터 허둥댔던 정부의 무능과 혼선 등 허술한 재난대응시스템이 세월호 참사에서 여실히 노출되면서 국민들의  비난과 질타가 쏟아지고기 했습니다.

      출처: 참여연대


      이렇게 세월호 참사에 대한 포스팅을 해보왔는데요.
      4월 16일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절대 잊혀질수 없는 날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러한 일은 절대 되풀이 되서는 안되는데요.
      비극적인 사고로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특히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성장할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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